다들 아시겠지만 에어팟은 애플에서 내놓은 무선 블루투스 헤드셋 제품군의 이름입니다.
에어팟이 처음 나왔던 2016년만 해도, 무슨 콩나물을 귀에 끼냐고 애플을 놀렸지만, 불과 수 년 만에 에어팟을 위시로 한 TWS - 완전무선이어폰 - 는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2020년에는 1억 1천만대 정도의 에어팟이 판매되었다고 하고요.
그러자, 중국인들은 에어팟의 짝퉁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이런 짝퉁 에어팟을 중국에서는 화창베이(華强北) 전자상가의 이름을 따서 "화창베이 에어팟"이라고 부르는데, 我爱音频网의 보도에 따르면 2020년 1월 ~ 10월의 기간 동안 판매된 화창베이 에어팟의 수만 6억 대라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 에어팟-짭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읍니다.
오해 짚고 넘어가기: "100% 카피"라는 카피의 허상
짭-에어팟에 사용되는 것은 정품에 들어가는 애플 W1, H1 SiP/SoC가 전혀 아닙니다. 애플의 정품 칩이 해킹되거나 복제되어 차이팟에 탑재되었다는 말은 완전히 헛소리입니다. (나무위키 꺼라)
???: iOS 연결시 정품 에어팟과 똑같이 페어링 창 (중국인들은 “탄창弹窗”이라고 부름)이 나오고, 배터리 잔량도 볼 수 있고, Hey Siri도 작동하며, 노캔을 끄고 켤 수 있는데?
이것은, 에어팟과 아이폰 연결에 사용되는 프로토콜만을 리버스 엔지니어링(역공학)하여 통신 작동을 파악한 뒤, 범용 블루투스 TWS 칩에 올라가는 펌웨어를 수정하여, 원본의 작동을 흉내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연히, 제품 구조 자체도 완전히 다릅니다. 진동판/드라이버, 배터리, 메인보드, 마이크... 모든 구성요소가 정품과는 다른 것이 사용됩니다.
따라서 여기에 정품급 음질과 노이즈캔슬링 성능을 바라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이건 그냥 중국산 블루투스 이어폰이고, 에어팟과는 그냥 생긴 것만 똑같이 생긴 겁니다.
아래 영상에서 수많은 짭-AirPods Pro의 분해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원본 에어팟과 내부 구조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같은 에어팟-짝퉁들끼리도 드라이버의 크기부터 종류까지, 제품과 판매자마다 모조리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원본 AirPods 제품의 드라이버와 다른 건 물론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정품의 몇십% 음질, 몇십% 성능이 나온다… 라고 말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애초에 다른 제품인데요.
칩셋
애플의 SiP 수준은 되지 못하더라도, 중국산 TWS 역시 요즘은 대부분 원칩 솔루션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원칩(또는 single-chip) 솔루션이란, 블루투스 통신 (베이스밴드와 라디오) 모듈, 오디오 DSP, 노이즈캔슬링 처리 시스템 등, 이어폰 제작을 위해 필요한 파츠들을 하나의 칩셋에 통합시켜 놓은 것을 말합니다.
TWS 이어폰을 스마트폰에 비유하자면, 칩셋은 AP나 CPU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칩셋을 제작하는 회사들로는 브로드컴, 퀄컴, 리얼텍처럼 유명한 업체도 많지만, 에어팟-짭에 들어가는 칩셋은 그보다 조금 더 덜 알려진 업체들의 제품이 대부분입니다. 초기에는 리얼텍 칩을 쓴 짭-에어팟이 많았는데, 2019년말 ~ 2020년초부터 슬슬 타사 제품으로 대체되어가는 추세라든가 뭐라든가 하네요.
화창베이 에어팟의 권위자(?)인 중국인 블로거 niceyoo씨는 보통 에어팟 프로-짭에 들어가는 칩의 수준을 다음과 같이 매기고 있습니다.
Airoha 1562A >= SmartLink 247 > SmartLink A6 > BES 2300 > Airoha 1562F > Airoha 1562M > Airoha 1536U > SmartLink A2 > Bluetrum 8892A > Airoha 1536S, Jieli(杰理)사 칩
Airoha
Airoha (중국어로 Luoda 洛达라고도 함)는 블루투스 무선 오디오 솔루션, GPS SoC, 네트워킹 게이트웨이나 스위치용 IC를 제작하는 대만 회사입니다. Airoha는 2017년 유명 반도체 제조업체인 미디어텍(MediaTek)에 인수되었고, 현재 미디어텍의 블루투스 오디오 관련 포트폴리오를 메꾸는 데 활약하고 있습니다. Airoha 칩을 사용하는 주요 TWS 제조회사로는 소니(WF-1000XM3 등), 애플(Beats Studio Buds)이 있습니다.
AB153x은 블루투스 5.0과 ENC (통화잡음감소)를 지원하는 칩셋으로, MCSync 기술을 탑재하여 두 개의 이어폰 모듈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TWS 사용 시나리오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다만 현 시점에서는 조금 구형입니다.
AB1562는 블루투스 5.2를 지원하는, 조금 더 최신의 칩셋입니다. Airoha 칩셋의 DSP는 지금까지도 나쁘지 않았다는 평이지만, 이번에는 텐실리카 DSP를 라이센싱해서 가격 대비 높은 음질을 보여준다는 평가입니다. 또, 특정 라인업의 경우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ANC)를 지원합니다.
- AB1562M: ANC 미지원
- AB1562F: Feedforward ANC만 지원
- AB1562A: Feedforward ANC와 Hybrid ANC 모두 지원
참고: ANC의 종류
- Feedforward ANC: 귀 바깥쪽에 노캔용 마이크를 장착하는 것.
- Feedback ANC: 귀 안쪽에 노캔용 마이크를 장착하는 것.
- Hybrid ANC: Feedforward + Feedback
SmartLink
SmartLink (중국어로 慧联 Huilian)은 2016년 중국 주하이에서 설립된 오디오 관련 IC 제조업체입니다. 칩 공급업체이면서 동시에 에어팟-짭의 솔루션 공급업체(아래 설명 참조)라는 카더라가 있습니다.
이 업체의 TWS247 칩을 사용한 짭-에어팟 일부는 자이로스코프를 탑재하고 있어 공간감 오디오를 지원합니다.
Bestechnic
Bestechnic (恒玄 Hengxuan)은 중국 상하이 소재의 오디오 IC 제조업체입니다. 2015년에 설립되어 업력은 짧으나 삼성의 갤럭시 버즈 시리즈, JBL Tune 225 등에 채용되는 등 상당한 실적을 거두었으며, 2020년 12월 상하이 증시에 상장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Jieli
杰理, Jerry. 이 회사 칩은 거르라는 게 학계정설입니다
보통 싸지만 성능이 구립니다.
솔루션 공급업체
이런 범용 블루투스 TWS용 칩을 떼어다가 에어팟 짝퉁을 만들 수 있도록 펌웨어, 보드 등을 만들어 납품하는 업체를 “솔루션(方案) 공급업체”라고 합니다.
현재 메이저(?) 솔루션 제공업체로는 다음 업체들이 존재합니다.
- 동관(东莞)의 하오뤼(豪锐, HR)
- 쑤저우(苏州)의 웨후(悦虎. 호랑이 모양 로고. Yuehu, Tigerbuilder)
- 선전(深圳)의 아이촹리(艾创力)
- 자허(佳和) - 조금 싸구려
특히 이들 중 두드러지게 활동하고 있는 회사들은 하오뤼(황소표)와 웨후(호랑이표)로, 이들은 이제 Android 폰에서 자사 짝퉁 에어팟을 컨트롤할 수 있게 하는 전용 앱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어차피 똑같은 칩을 쓰는데 솔루션 제공업체가 뭐든 상관이 있나?
있습니다.
칩셋이 이어폰 성능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기는 하지만, 같은 칩셋을 사용하더라도 제조사의 능력에 따라 최종 결과물의 모습은 완전히 다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소니 WF-1000XM4에 탑재되는 미디어텍 MT2822 칩셋은 Airoha AB156x를 기반으로 SiP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WF-1000XM4의 성능과 1562A가 들어간 짝퉁 에어팟의 성능이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소프트웨어 최적화와 나머지 하드웨어 설계에 따라 최종 결과물은 완전히 뒤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니와 짝퉁을 비교한 것처럼 극적인 차이는 아닐지라도, 짝퉁들 사이에서도 이처럼 제조사에 따른 차이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세대
정품 에어팟은 다음과 같은 제품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AirPods (1st generation)
최초의 에어팟. "그 콩나물"입니다. - AirPods (2nd generation)
디자인은 1세대와 동일합니다. W1 칩셋이 H1 칩셋으로 변경되었고, 무선 충전을 지원합니다. - AirPods Pro
액티브 노이즈캔슬링(ANC)을 지원하는 제품으로, 디자인이 1/2세대의 일반 에어팟과는 다릅니다. - AirPods Max
이건 헤드폰입니다. - AirPods (3rd generation)
에어팟 프로를 베이스로, ANC를 제거한 버전입니다.
반면, 짝퉁 에어팟은 다음과 같이 세대구분(?)을 합니다.
- 1세대 (1代)
에어팟 1세대 (1.) 의 짝퉁. 초창기라 원본 하우징 사이즈에 제품을 구겨넣는 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 2세대 (2代)
에어팟 2세대 (2.)의 짝퉁. 기술이 안정화(?)됨에 따라 대부분이 원본 에어팟의 하우징 사이즈와 동일하며, 무선 충전을 지원합니다. - 3세대 (3代)
에어팟 프로 (3.)의 짝퉁. 초창기 제품은 ANC를 지원하지 않았으나, 현재 유통되는 제품 중 많은 수는 ANC는 지원합니다. 공간감 오디오는 Huilian A6 Pro 외에는 미지원. - 4세대 (4代)
에어팟 3세대 (5.)의 짝퉁. "3세대" 짝퉁에서 ANC를 뺀 것이라고 생각하면 대충 맞습니다.
슈퍼팟! 버전 4.5! 제리 에디션! 이런 것은 알리익스프레스 등지의 판매자들이 멋대로 붙인 이름으로 중국 현지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명칭... 이라는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는 보통 칩셋 이름 + 솔루션 제공업체 이름을 쓴다네요.
배터리
정품 AirPods Pro의 이어폰 모듈에는 독일 VARTA사의 CP1154 원형 배터리가 사용됩니다. 11mm 지름의 5.4mm 두께로 160mWh이고, 3.6V니까 역산하면 44.45mAh이겠네요.
일반적으로 짝퉁-에어팟 프로들은 이것보다 작은 용량의 배터리를 사용합니다. 예전에는 주로 20-30mAh 남짓한 사각형 리튬-폴리머 전지가 들어갔으나 요즘은 30mAh-40mAh 정도 되는 원형 전지를 사용해 용량이 늘어났다네요. 최소한 스펙상으로는...
TL;DR
돈 좀 더 모아서 정품사세요
2편에 계?속?